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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잡스의 힘 인재발굴에 있었다.

by 유비넥스 2017. 4. 18.

우리의 사업에서 혼자서는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이제는 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당신은 팀의 업무에 대해서 성실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컴퓨터 월드 스미스 소니언 인터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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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신선한 아이디어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이 계획을 완수하기 위한 훌륭한 전략들을 멋지게 짠다고 해도 실행되지 않은 기획은 종이문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기획안을 내놓은 사람은 정작 설계도나 디자인에 선 하나 직접 그리지 못하고 프로그래밍 코드의 한줄 하나 작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자신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기획의 가장 극단적인 면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세상에는 디자인도 하고 프로그래밍을 할줄 아는 다재다능한 사람도 있겠지만 스티브 잡스가 할 수 있는 건  “기획” 그 자체뿐이다. 스티브 잡스는 프로그래밍을 할 수도 없고 컴퓨터 엔지니어도 아닐뿐더러 디자인도 직접 할 수 없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의 성공은 기획의 훌륭한 모델이 된다. 왜냐하면 기획의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하는 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은 스티브 잡스도 사업 초기에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사업초기에 스티브 워즈니악 조차도 기획적인 일을 주로 담당하는 스티브 잡스를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와의 동업관계를 못마땅하게 여긴 스티브 워즈니악의 부모 들은 다른 동업자를 찾도록 조언을 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은 코모도어와의 계약협상에서 드러난다. 전자계산기 업체인 코모도어는 이제 막 차고에서 창업된 애플을 인수하려고 했다. 스티브 잡스는 10만달러의 인수금액에 코모도어의 주식 그리고 연봉으로 3만 6,000달러를 요구했다.  그런데 협상과정을 지켜보던 스티브 워즈니악의 아버지는 코모도어로부터 받는 이익을 스티브 잡스와 나누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워즈니악 아버지는 잡스 면전에서 넌 아무것도 한게 없다면서 너는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큰소리쳤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워즈니악 아버지 말에 좌절감을 느끼고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기획력은 빛을 발했다. 스티브 워즈니악의 아버지와는 달리 스티브 잡스는 코모도어를  마땅치 않게 여겼고 그들과 같이 일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코모도어와 협상이 깨진 것은 애플의 미래를 위한 탁월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의 대단함은 자신을 무시하던 사람마저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스티브 워즈니악의 가족이 스티브 잡스가 눈물을 흘리게 할정도로 독설을 날렸지만 정작 나중에는 스티브 잡스의 편이 된다. 스티브 잡스가 마이크 마쿨라를 설득해서 9만 1천 달러를 투자 받게 되고 애플은 주식회사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스티브 워즈니악이 HP를 계속 다니고 싶어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애플 2 컴퓨터를 하루라도 빨리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한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티브 잡스는 이때 묘책을 떠올린다.  주변사람을 부추겨서 스티브 워즈니악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친구들이 연달아서 HP를 그만두고 애플에 전념하라고 하자 스티브 워즈니악도 마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가족과 친구들의 설득에 넘어간 스티브 워즈니악은 HP를 그만둘 결심을 하게 된다. 스티브 워즈니악의 가족들이 원래는 스티브 잡스를 인간적으로 경멸할 정도였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스티브 잡스의 편이 된 것은 정말 재미있는 반전이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마이크 마쿨라를 데려와서 동아리 수준이었던 애플을 주식회사로 변모시킨 수훈을 세운 것이 결정적일 것이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 가족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걸 알아도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배짱 역시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을 뒤돌아 보면 결국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은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자신의 비전을 구현해 줄 인재를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실 스티브 잡스가 하는 것도 그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에 광고와 홍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자 그는 전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누가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었다. 인텔에서 기술보다는 감성에 의존한 색다른 광고를 내서 화제가 된적이 있다. 스티브 잡스 역시 이 광고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인텔에 전화를 해서광고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어봤다. 레지스 메키너인 것을 알고 스티브 잡스는 그를 접촉해서 애플의 마케팅을 맡기었다. 


레지스 메키너의 도움으로 애플2는 세련되고 감성적인 광고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좋은 인재는 다른 인재를 불러모은다. 레지스 메키너는 스티브 잡스에게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돈 밸런타인을 소개시켜주었다. 그리고 돈 밸런타인은 다시 인텔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일했던 마이크 마쿨라를 연결시켜준것이었다. 그리고 마이크 마쿨라가 애플에 합류한 이후에는 경영자로 내셔널 세미콘닥터에서 이사로 재직중이던 마이클 스콧을 데려온다.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 마쿨라 그리고 마이클 스콧은 회사를 함께 경영했는데 이들은 외부에서 인재를 데려오는 역할을 많이 했다.   


IT 기업은 다른 어떤 비즈니스 분야보다도 인재가 중요하다. 빌 게이츠는 회사에서 핵심적인 인재 30명만 나가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적수가 생길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IT 기업은 공장처럼 고정설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에 의해서 움직이는 분야이다. 그래서 애플이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단 두명이 차고에서 초라하게 시작해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 기숙사에서 시작했고 구글 역시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페이지가 차고에서 창업을 했다.


 페이스북 역시 마크 주커버그와 그의 친구들이 기숙사에서 사업을 시작해도 단 몇 년만에 500억달러의 가치가 있는 회사로 성장하였다. 그래서 인재들을 불러모으고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스티브 잡스이기 때문에 비록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애플을 세계 최고의 IT 기업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애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한번 살펴보자.  한때 애플의 상징이었던 무지개빛 애플로고는 롭 야노프가 그렸다. 하지만 롭 야노프에게 일을 시키건 바로 스티브 잡스이다.  최초의 애플 로고 역시 스티브 잡스가 고용한 론 웨인이 그렸다. 하지만 회사로고가 말똥처럼 보이는게 마음에 안들었던 스티브 잡스는 로고를 새로 만들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로고를 그려줄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마침 레지스 메키너를 통해서 롭 야노프를 소개받는다. 스티브 잡스는 로고의 이미지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간단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일을 맡긴다.


  롭 야노프는 스티브 잡스의 지시대로 한입 베어문 무지개빛 로고를 완성한다. 그런데 기획에서 중요한 항목은 결과물에 대해서 올바른 판단을 할 줄 아는 통찰력이 중요하다. 롭 야노프가 완성 시킨 회사로고에 대해서 회사 관계자들은 반대를 하였다.다. 색상이 화려하면 그만큼 인쇄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당시만 해도 색이 세가지를 넘지 않던 시기였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롭야노프가 그린 로고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고집한 끝에 겨우 이를 관철 시킬 수 있었다.


플라스틱 케이스 역시 인재를 볼줄 알고 그 인재에게 일을 시킬줄 아는 스티브 잡스의 활약이 있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다 시피 스티브 잡스는 애플 2 컴퓨터는 일반인도 친숙한 컴퓨터가 되어야 한다고 봤다. 그래서 그는 가전제품처럼 친숙하게 보이기 위해서 플라스틱 케이스를 사용하기로 결심한다. 이제 스티브 잡스에게 남겨진 과제는 플라스틱 케이스를 이용한 아름다운 디자인이 필요했다. 처음에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공동창업자였으나 지분을 팔고 회사를 나간 론 웨인에게 디자인을 부탁했다. 하지만 론 웨인이 그려준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


 처음 스티브 잡스는 실리콘 밸리에서 최고 뛰어난 디자인 회사를 찾아갔으나 두군데에서 거절을 당한다.  스티브 잡스는 수소문 끝에 겨우 휴렛 팩커드에서 근무헀던 프리랜서 디자이너인 제리 마녹을 알게 된다.  플라스틱 케이스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제리 마녹은 한번도 이런 일을 한적도 없었고 스티브 잡스가 제시하는 기한이 너무 빠듯하였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도면을 그려주면 1,500달러를 주곘다고 하자 바로 승낙을 했다. 그런데 제리 마녹은 스티브 잡스가 정말 돈을 지불해줄지 의문스러웠다. 그래서 선불로 돈을 미리 지불 받고 싶어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반드시 돈을 지불할것이라고 안심시키고는 자신의 뜻대로 일을 시켰다. 제리 마녹은 기대에 부흥하였고 스티브 잡스는 제리마녹의 디자인에 열광하였다. 애플 2 컴퓨터의 멋진 플라스틱 케이스 덕분에 이후 컴퓨터 업계는 너도나도 플라스틱 케이스를 채용하기 시작했다.


스노우 화이트를 만들어낸 하르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를 발굴한것도 스티브 잡스다. 스노우화이트는 컴퓨터 케이스의 로고 모양과 표면 컬러와 제조방식까지 담아낸 디자인 가이드라인이다.  스노우 화이트를 바탕으로 애플이 제품을 만들자 이에 대한 격찬이 쏟아졌고 1984년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디자인에 격찬을 들었다. 스노우 화이트는 이후 컴퓨터 디자인의 교과서 같은 존재로 오랫동안 사랑받은 디자인 양식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세계최고의 디자이너를 찾아내겠다는 각오로 공모전을 열었고 스티브 잡스는 하르무트 에슬링어를 발굴하게 된다. 


뉴욕 5번가의 애플 스토어는 개장할 때부터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큰 화제를 불러모았고 지금은 뉴욕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었다고 한다. 뉴욕 5번가의 애플 스토어를 디자인한 사람은 건축가 피터 보울린(Peter Bohlin)인데 그를 고용한 사람 역시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애플 스토어 이전에도 피터 보울린과 스티브 잡스는 함께 일한 적이 있다. 픽사의 본사건물을 디자인한 사람이 바로 피터 보울린이었다. 그의 능력에 감탄한 잡스는 애플 스토어 디자인도 맡기게 된다.  피터 보울린은 한번도 상점을 디자인한 적이 없었지만 스티브 잡스는 그의 재능을 간파하고 일을 맡겼다. 스티브 잡스는 피터 보울린에게 애플 스토어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상점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싶은 소셜 공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폰을 가진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그런 멋진 장소를 디자인하라는 말에 보답하듯 뉴욕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찍는 장소 5위에 오르며 인기있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를 보충할 사람을 찾아내는데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애플은 오래전부터 재고관리가 문제였다. 컴퓨터 업계에서 재고관리는 무척 중요하다. 컴퓨터 부품은 시간이 지나면 신선하지 않은 야채값이 떨어지듯이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해서 1년치의 재고를 70일로 줄였지만 스티브 잡스는 좀 더 뛰어난 인재가 필요했다.  스티브 잡스는 헤드헌팅 회사를 통해서 팀쿡을 소개받게 된다. 팀쿡은 스티브잡스와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다.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스티브 잡스와 달리 팀쿡은 침착하고 이성적이었다.  쉽게 흥분하지 않고 예의바른 팀쿡에게 호감을 느낀 스티브 잡스는 그를 애플로 스카우트 해온다.  


스티브 잡스의 눈은 정확했다. 재고는 몇 달치가 아닌 며칠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팀쿡은 제조와 유통관리에 전면적인 손질을 가하였다. 비효율적인 공장들을 폐쇄하고 부품공급 경로를 간소화하였다. 팀쿡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부품 공급업자와 좋은거래를 맺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일했다. 팀쿡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애플은 재고가 거의 없는 회사가 되었다. 애플에게 재고관리는 한때 고질적인 병폐와도 같았지만 이제 애플의 자랑이 되었다. 2010년 공급망 관리 시스템전문으로 연구하는 세계적인 기관인 AMR리서치가 발표하는 공급망 관리 톱 25에서 애플이 당당히 1위에 올려져 있다. 그것도 2008년 이후 3년 연속이뤄낸 성과였다.


-원문 : 멀티라이터의 10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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